네팔 지진 이재민 법보 독자 보시로 삶의 희망 되찾다
▲ 6월9일 귀국한 네팔 출신 티베탄 라마다와파상(한국명 민수)씨가 법보신문사를 찾아 네팔 구호활동 및 재건활동에 대해 설명했다. 민수씨는 네팔 현지 NGO 드록포(Drokpo)가 법보신문과 독자들에게 전하는 감사장을 대신해 전해줬다.
네팔 출신 티베탄 라마다와파상(한국명 민수)씨가 3주간의 네팔 구호활동과 재건활동을 종료하고 6월9일 한국에 돌아왔다. 민수씨는 대지진으로 시름에 빠진 네팔 국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십시일반 마음을 모아준 한국의 불자와 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현지 활동내용을 정리해 서면으로 보내왔다.
민수씨, 본지에 활동 보고
구호품, 헬기이용 산간전달
계속된 여진에 두려움 가득
본지 1500만원 추가로 지원
네팔지원 2차 방문도 준비
민수씨가 법보신문사를 방문해 네팔 지진피해 구호물품 전달을 요청한 것은 4월30일이다. 4월25일 네팔 동부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가옥이 파괴되고 수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티베탄들이 운영하는 네팔 현지 NGO 드록포(Drokpo)는 민수씨에게 긴급구호를 위한 지원을 요청했다. 민수씨는 페이스북에 관련 내용을 알리는 한편, 법보신문사를 방문해 동참을 요청했다. 본지는 네팔 국민의 아픔을 나누고자 ‘이주민 돕기 나눔캠페인’ 기금 3000달러 지원을 결정했다. 여기에 통도사 율원, 여수 석천사, 불자와 시민 등의 정성이 모아져 텐트 100개와 침낭 100개, 손전등 150개, 작업용 장갑 1000장, 마스크 5000장의 구호물품이 마련됐다.▲ 한국의 불자와 시민들이 마련한 구호물품은 대부분 도로 붕괴로 접근이 쉽지 않아 구호의 손길이 절실한 산간마을을 중심으로 헬기를 이용해 전달됐다.
민수씨는 4월30일 오후 운송업체에 구호물품을 전달했다. 그러나 항공편 지연과 네팔 세관의 비협조 등으로 드록포에 인계된 것은 5월16일이 되어서다. 그 사이 민수씨가 개설한 네팔 지진피해 후원계좌에는 1000여만원이 모연됐다. 민수씨는 모연된 기금을 드록포에 전달하고 구호활동에 힘을 더하고자 잠시 생계를 접고 네팔로 향했다.
민수씨에 따르면 5월19일 도착한 카투만두 공항 주변은 생각했던 것만큼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인근 도로나 가옥의 모습에서도 대지진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공항을 벗어나 시내와 가까워질수록 상황은 점점 변해갔다. 부서진 도로, 무너져 내린 가옥, 공터에는 어김없이 천막이 쳐 있었고 사람들의 눈에는 슬픔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환경은 진앙지로 갈수록 더욱 처참했다.
민수씨는 드록포에 도착한 한국의 구호물품을 신두팔촉과 고르카, 박캉 등 최대 피해지역에 전달했다. 대부분 헬기를 이용해 도로 붕괴로 접근이 쉽지 않아 구호의 손길이 절실한 산간마을이 대상이었다. 특히 산간 지역은 식량과 식수 사정마저 좋지 않아 구호물품에 쌀과 식용유, 식수 등이 함께 전달됐다.
▲ 민수씨에게 전달받은 성금 목록과 사용처.
동시에 마을 재건을 위한 지원활동도 진행됐다. 민수씨는 드록포 관계자, 마을대표들과의 논의를 통해 함석지붕과 바닥용 파랫트 지원을 결정했다. 함석지붕은 우선 임시거처로 사용하다 집을 지을 때 지붕으로 이용하고, 가축우리 등으로도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품이 부족해 몇 시간을 걸쳐 찾아가 밤새 기다리는 등 구매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특히 물품 부족에 따른 주민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을주민 스스로 지원 대상을 정하도록 했다.
당초 민수씨는 6월1일 귀국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본지에 민수씨를 통한 재건동참 기탁기금이 답지하면서 네팔 일정을 1주일 연장했다. 법보신문에 답지한 지정기탁기금은 1467만7000원이었다.
▲ 네팔 현지 활동을 날짜별로 정리해 보고했다.
“네팔 지진피해 구호기금으로 3000만원이 모였습니다. 법보신문을 비롯해 모금에 동참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부족한 제가 많은 분들의 마음과 격려를 대신해 전하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네팔 국민들은 아직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픔을 나누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관심과 동참을 부탁드립니다.”
민수씨는 네팔 지진피해 재건을 위한 2차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 목표금액은 3500만원으로, 기금이 조성되면 다시 네팔을 방문해 산간마을을 중심으로 재건활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다음은 네팔 출신 티베탄 라마다와파상씨가 본지에 보내온 서한 전문.
지난 4월 25일에 네팔 대지진이 발생하였고, 네팔 현지의 단체 드록포의 해외홍보 담당 노르부 칼덴(Norbu Kalden)님께서 텐트가 필요하다고 요청이 왔습니다. 그래서 부랴 법보신문을 찾아가 상황을 말씀드렸고, 법보신문에서 선뜻 3천 달러를 지원해 주셨습니다. 그와 함께 많은 개인과 단체들이 동참해주셔서 1차로 텐트 100개, 침낭 100개, 구호작업 장갑 1000장, 전염병예방을 위한 마스크 5000장, 태양열 자가발전 손전등 150개를 비행기 운송으로 4월 30일에 운송업체에 전달했었습니다. 그러나 비행기 일정 조율등으로 지연되어 네팔 현지에 도착했지만, 통관절차로 카트만두 공항 세관 절차로 또 다시 지연되어 5월 16일에 드록포에 당도했습니다. 그러나 구호물품을 전달해야 되는 마을들이 너무 외진 곳이 많아 헬기로 가야했고, 헬기 예약을 해놓고 기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기서 2차로 모인 구호모금 1천여만원을 네팔로 송금하고 5월 18일, 한국에서 출발했습니다.
네팔 현지시간 1시에 도착하니, 신두빨촉 카브레의 두 개 마을 대표분들이 공항에 마중 나오셨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과 함께 저의 집에 가서 짐을 풀고 바로 함석지붕을 구매하러 떠났습니다. 함석지붕을 판매하는 곳이 오토바이로 카트만두에서 40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바네파에서 저녁 7시반까지 기다렸다가 결국, 함석지붕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로 약속을 받고, 다음 날 새벽 6시에 겨우겨우 가게 2곳을 합쳐서 162채의 집을 수리할 정도의 함석지붕을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출발했습니다. 바네파에서 대략 차로 3시반 걸려 신두빨촉 카브레 마을 2곳에 함석지붕을 나누어 주다가 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텐트치고, 노상에서 잠을 자며 밤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마을 공터에 모여 동사무소 직원과 마을 주민 어르신들과 함께 회의를 했습니다. 그 회의를 통해 마을 주민들에게 함석지붕이 너무나 필요한 물품이었다는 것을 다시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카브레 마을에는 1번 ~ 10번 까지 총 10개의 마을이 있습니다. 총 1,200채의 집들이 있었는데 형태가 남아있는 집은 50채가 채 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또, 지원이 온다면 제가 다시 들리겠다는 심심한 인사를 전하고 돌아왔습니다.
5월 20일 드록포와 회의를 통해 신둘리 마을에 100여 가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함석지붕을 50채 가구를 위해 구매하고 출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5월 21일 바네파에서 출발하여 현지에 도착하여 마을대표와 마을 주민들이 함께 상의하여 제일 급한 분들에게 나누는 것이 어떻냐는 의견에 따라 해당 주민의 이름을 불러서 나누어 드리고 카트만두로 돌아왔습니다.
5월 22일 신두빨촉 카브레 메체 촙탈 마을의 100여 가구에 쌀 3톤, 식용유 100리터를 긴급식량으로 전해드렸습니다. 역시 이곳에도 함석지붕을 원했으나 함석지붕 재료를 구하지 못해 식량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이 날 2번 목숨이 위태로웠습니다. 많은 분들의 기도로 다행히 무하시 전달하고 카트만두로 돌아왔습니다.
5월 23일 네팔과 티베트의 국경이 접한 박캉이라는 지역에 사원이 있는데, 지진으로 이 사원과 사원에 수행하시는 승려 분들의 숙소가 큰 피해를 입어, 임시거처 마련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이시파티라는 곳에 가서 비구니스님 250여분이 머무르실 거처에 대한 상황을 보고, 임시숙소 마련에 필요한 함석지붕 일부를 사다 전해드렸습니다. 그 후 자울라켈이 있는 티베트 난민촌이 가까워서 이곳에 찾아갔습니다. 티베트 난민분들이 천막에 계시길래 어떤 도움이 필요하냐고 여쭈었습니다. 그 중에 대표이신 분이 식수가 시급하다고 하셔서 식수 500박스 (6천리터)를 320가구에 전해드렸습니다.
제가 이렇게 나누어주고 있는 차에, 드록포가 사마가우라는 곳으로 헬기를 타고 출발하여 약 500kg의 구호물품을 싣고 가서 5월 25일에 전해드렸다고 합니다. 참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저희가 고생하여 보낸 구호물품이 정말 구호의 손길이 전혀 닿지 못했던 어려운 곳에 전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텐트, 침낭, 쌀, 전등, 작업장갑, 마스크들이 전달이 되었습니다.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5월 24일 신두빨촉 힐레가우라는 마을에 쌀 4톤, 식용유 160리터, 달 160kg, 차외 위생용품 등 긴급물품을 지원해드렸는데 이곳에는 160가구가 있었습니다. 제가 나누어준 후 이 마을에서 함석지붕이 꼭 필요하다는 마을 주민의 말씀에 제가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시중에 함석지붕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마을 주민들이 전혀 알지 못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5월 25일에는 저의 친척이 미국에서 네팔로 왔고, 전해야 할 구호물품과 구호기금이 있는데 네팔어를 잘 몰라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여 25일~27일 3일동안 골카와 신두빨촉, 티베트 난민촌등에 들려 함석지붕과 구호물품들을 전달하는데 함께 했습니다.
5월 28일 멜람치 지역에 5월 24일과 같은 구호품목을 160여가구에 전달해드렸습니다. 그리고 카트만두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5월 26일에 전달받은 법보신문에서 주신 구호모금 8백만원으로 어떠한 지원을 해드릴지 드록포와 회의를 여러 차례 진행했습니다. 회의에서 결정한 데로 움직이기로 하여 5월 31일에는 버우다에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 사무소에 들렀습니다. 여기에는 티베트 난민들 중 이재민이 된 분들이 임시로 머물기도 하고, 도움을 요청하러 오기도 하는 데 대강당이 있었고 여기에 매트리스가 필요하다고 하여 매트리스 100개를 지원해드렸습니다.
같은 날 5월 31일 티베트 접경지역에 있는 따시치메 사원이 있는데 이 사원이 완전히 파괴되어 카트만두로 피해서 스님들이 임시숙소를 마련해 지내고 계셨습니다. 말이 숙소이지 천막을 치고 너무 열악한 모습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여쭙자, 바닥의 냉기를 막아줄 깔판과 이불이 필요하다고 하여 전해드렸습니다. 같은 시각 드록포는 바닥용 파랫트와 마스크, 장갑을 여러 마을에 두루두루 다니며 나누어 주었습니다.
또한 저의 아버지를 통해 카트만두에 있는 버우다 지역의 양로원에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있었는데, 그 중에 화장실과 수도, 정수기 수리와 물품을 사서 지원해드렸습니다.
지원현황을 페이스북을 통해 보고 다른 티베트 난민촌에서 제게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6월 3일과 4일에는 캄빠 캠프에 갔습니다. 캄빠 캠프인데 졸파티에 있는 난민촌 안의 학교에 천막과 50가구에 긴급식량으로 쌀 1,250kg를 지원해 드렸습니다. 또한 티베트 난민 병원이 있다는 주민의 이야기를 듣고 50여명의 아이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병원에는 긴급식량 쌀 300kg를 지원해드렸습니다. 그 중 한 아이를 만나 가장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니까 만두와 탄산음료가 먹고 싶다기에 아이들 50여명과 병원 식구 모두가 드실수 있게 사다드렸습니다.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그냥 마음이 시켜서 했습니다.
6월 5일에는 박캉에 있는 사원을 돕는 단체 세담에 회의 참석 요청이 왔고, 갔습니다. 그 단체가 특별히 한국에 요청할 것이 있다하여 회의를 참석하게 되었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버이시파티에 있는 스님들 임시거처는 대략 1~2년 동안 유지할 생각이고, 장마가 끝나는 대로 박캉 리핑 지역의 사원과 마을 재건을 위한 일을 시작할 계획이며, 여기에 필요한 도움을 한국 불교계에 요청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현지 상황을 보기위해 6월 6일 새벽 4시에 박캉으로 출발하여 11시 도착했습니다. 7시간 가는 동안 내내 무너진 모습만이 보였습니다. 도로는 산사태로 위험한 상황이었고, 지역 전체가 무너져 초토화라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나올 정도였습니다.
제가 카트만두에 도착해 보니 지진으로 그렇게 큰 피해가 왔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큰 도로에는 피해 상황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내 곳곳에 임시 천막 아래서 지내는 네팔인들의 비참한 모습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내를 벗어나 지방과 지진의 진앙지로 갈수록 건물, 도로, 마을의 무너진 모습들이 생각보다 더욱 심각했었습니다. 여기저기 구호의 손길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디에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에 대한 것을 잘 알고 가야겠다는 필요성을 많이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도로가 있는 곳이면, 식량이고 텐트고 식수를 비롯한 구호물품들이 여러 번 지원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을 동사무소나 마을의 주민, 대표와 연락 없이 가서 물품을 나누는 곳에는 작은 소란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주민 수나 마을규모를 잘 파악하지 않고 가면 누구는 도움을 받고, 누구는 도움을 받지 못해 주민들끼리 감정이 상하는 일이 있는 걸 듣고, 보았습니다. 그나마도 도로 있는 곳의 상황입니다.
지금 외진 산간 마을에는 도로가 붕괴되어 사람이나 차가 갈 수 없어, 헬기로 구호물품을 전할 수밖에 없는 곳이 너무나 많습니다. 헬기는 선불 주고 예약을 하여 기다려야 합니다. 가는 헬기는 있으나 돌아오는 헬기는 다시 예약하고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 더욱 어려운 현실입니다. 헬기 한번 띄우는 데 약 3백만원 이상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헬기를 예약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또, 네팔 지진피해 지역에 있는 학교들은 거의 남아있는 학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학교 피해복구를 위한 그 어떠한 것도 손을 못 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식량 지원을 받지 못한 곳은 도로가 없는 곳이 많고, 도로 있는 곳에는 식량지원은 어느 정도 된 것 같아 보입니다. 이제는 재건이나 임시 거처마련에 힘을 써야 할 때로 보입니다. 또한 주민 스스로가 일어나게 하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봉사단이 임시거처 마련을 위한 주민들 교육을 해준다거나 아니면 주민들이 봉사단과 함께 참여하는 재건작업들이 필요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너무 구호의 손길만 의존하는 것 같이 보인 것도 있었고, 그걸로 악용하는 소수의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제가 전달해드린 함석지붕은 임시거처로 쓰다가 재건하게 되면 다시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선택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다시 집을 지을 때 지붕으로 사용 할 수 도 있고, 가축을 키운다면 우리를 짓는 데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참 또 하나, 시골은 땅이 넓어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시내에는 월세로 사는 사람들이나 집이 없는 사람들이 또 다른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진이 잠잠해지니 땅 주인들이 천막치고 생활하는 사람들을 내쫓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방도 못 구하고, 살 곳이 없어진 그런 참담한 상황도 목격을 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씀을 드려야 하는지 어렵습니다. 너무 많은 피해와 지속된 여진들, 많은 집들이 외관상으로 괜찮아 보이지만 벽에 금이 가는 등 집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아 집 안에서 대부분의 생활을 하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끝으로 이번에 총 약 3천만원의 구호모금이 모여졌습니다. 법보신문에 너무 감사드리며, 모금에 동참해주신 모든 분들께 꼭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부족한 제가 많은 분들의 믿음과 마음을 안고 가서 잘 전하고 무사히 돌아왔으며, 아직도 필요한 많은 도움을 요청 받고 왔습니다.
2015년 6월 10일 민수
[1298호 / 2015년 6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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